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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핸드볼 일정

복지사업안내 2023. 9. 2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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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이란?

핸드볼은 일반적으로 골키퍼 1명, 코트 선수 6명, 7인제 경기이며 경기단 전·후반 30분으로 운영, 중간에 10분 쉬는 시간이 존재한다. 경기장 규격은 가로세로 40X20m2 이며, 3x2m2 규격의 골대에 골을 넣으면 득점한다.

최근 비치 핸드볼도 각광받고 있는데골키퍼 1명, 코트 선수 3명의 4인제로 경기당 10분씩 2 피리어드로 진행, 세트 점수 1:1일 경우 골든골로 승부를 결정하는 다이내믹한 종목이다. 스카이 슛, 360도 회전 슛 등 창의적이거나 화려한 슛에 성공하면 2점 인정, 패널티스로에 의한 득점 2점 인정, 골키퍼 득점 2점 인정, 신체 접촉 금지 등의 규칙이 있으며 유스올림픽 정식 종목, 세계선수권대회가 격년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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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역사

 

핸드볼은 처음 우리나라 체육교과 내용에 편입될 때 수구(手球)로 지칭되었으며 그 뒤에는 송구(送球)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7년에 대한송구협회가 대한핸드볼협회로 바뀌면서 도입 이래 20년간 사용된 송구라는 용어가 핸드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핸드볼 경기 자체의 도입은 1936년 일본에서 체육교육을 받고 온 이병학, 조연하 등이 체육교사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필드핸드볼(11인제)을 지도한 것이 처음이었다. 1945년 10월 조선송구협회가 창설되었고 이듬해인 1946년 5월 29일에는 최초의 송구대회(11인제)인 제1회 남녀중학송구대회가 개최되었다. 1946년 제27회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송구가 처음으로 대회종목에 포함되었고, 그로 인해 이후 많은 학교에서 송구팀을 육성하였다.

1960년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핸드볼연맹 총회에서 한국은 이집트와 함께 26번째 회원국으로 연맹에 가입하여 국제적인 입지를 마련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대한핸드볼협회는 1963년부터 11인제를 완전히 폐지하고 7인제 경기만을 실시하기로 방침 을 세웠다. 이로써 11인제는 역사의 장으로사라지고 7인제 시대가 새롭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 국가대표선수로 활동한 저 자는 일본국가대표선수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신기술을 전수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핸드볼의 본고장인 유럽 핸드볼을 직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IHF 공인 연맹인 아시아핸드볼연맹은 1977년 제1회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를 회장국인 쿠웨이트에서 개최하였 고, 한국팀은 여기에 참가하여 1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결승전까지 올랐다. 그러나 한국팀은 결승에서 일본을 만나 완패하였고 준 우승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1978년 6월에는 여자 대표팀이 제7회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일본에 이겨 체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첫 출 전하였지만 3전 3패의 성적으로 결선 순위전에도 올라가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1981년에는 양정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핸드볼 선수로 활약한 김종하 회장이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이때 협회는 아시아핸드볼연맹과 국제핸드볼연맹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한국 핸드볼의 국제적인 위상 강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덕분에 한국핸드볼은 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김종하는 아시아핸드볼연맹 수석부회장과 국제핸드볼연맹 집행위원(1988-1996) 외 현재 아시아핸드볼연맹 기술위원장 겸 국제핸드볼연맹 기술위원(2012-현재)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핸드볼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이에 한국대표팀도 대회에 참가하였으며, 일본, 중국 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반면 1983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남∙여 모두가 일본의 벽을 넘어 우승의 벽을 넘어 우승의 고지를 탈환하였다.
그 이후 구소련이 주도한 1984년 LA올림픽 집단 보이콧으로 인해 한국 남∙여 국가대표팀은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를 얻 게 되었고, 이 대회에서 여자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하여 유럽권이 아닌 팀이 처음으로 메달권에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어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선수단이 우승을 거두며 아시아 핸드볼의 정상으로 우뚝 섰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 서는 여자부가 금메달, 남자부가 은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핸드볼 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 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평균나이 20.3세의 젊은 여자팀이 금메달을 획득하여 올림픽 2연패라는 기록을 세웠고, 이는 세계 여자핸드볼계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여자핸드볼의 위상은 더 높아졌고 1995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공동 개최된 제12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도 최 초로 우승하여 한국이 세계여자핸드볼의 최정상임을 확인시켜주었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는 여자팀이 결승 연장선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이후 유럽팀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기 시작하였 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남∙여 대표팀 모두가 메달 획득에 실패하였으며 2003년 일본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전에서 남자팀은 출전권을 확보하였으나 여자는 중국에 패하여 출전권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자팀은 2003년 12월 크로아티아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여 재도약의 발판을 마 련하였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전까지 진출하였다. 결승에서 덴마크와 만난 여자팀은 2회 연장전과 마지막 승부던지기까지 갔으나 은메달을 그 뒤에 이어진 2021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메달권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남자대표팀은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는 아시아의 정상을 지켰으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부터 카타르대표팀이 용병 선수들 을 대거 영입하는 바람에 왕좌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팀은 2014년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와 세계여자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였다. 이어 2018년 자카르 타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팀이 금메달, 남자팀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에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한국 핸드볼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대한핸드볼협회장으로 취임하여, 핸드볼인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핸드볼 전용경기장을 잠실 올림픽공원 내에 건립하여 실용적인 교육과 훈련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있다. 그 밖에도 꿈나무 발굴 사업, 남∙여 실업 팀 창단과 교육대학교 남∙여 팀 창단, 핸드볼 발전재단 설립 등이 진 행되어 한국핸드볼 선수들과 지도자에게 다방면으로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핸드볼 국가대표 명단

남자팀: 프레이타스 지도자, 골키퍼로 이창우(한국체대), 김동욱(두산). 레프트윙에서는 송제우(한국체대), 장동현(SK)가 나섭니다. 레프트백에는 이현식(SK), 박영준(인천도시공사), 박광순(하남시청) 등이 선발됩니다. 센터백에서는 강전구(두산), 이요셉(상무)이며, 라이트백에는 김진영(스페인 아데마르 레온), 조태훈(두산)이 합류했습니다.

여자팀: 시그넬 감독, 골키퍼에는 정진희(서울시청), 박새영(삼척시청), 박조은(광주도시공사). 레프트윙은 윤예진(서울시청), 신은주(인천시청)이며, 레프트백에는 조수연(서울시청), 송혜수(광주도시공사). 센터백에서는 강경민(광주도시공사), 이미경(부산시설공단)이 출전합니다.

 

핸드볼 경기일정

✔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대표팀 조별리그 B조 일정

🇰🇷v🇭🇰 9.25(월) 13:00 (KST)

🇰🇷v🇶🇦 9.27(수) 17:00 (KST)

✔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 조별리그 A조 일정

🇰🇷v🇺🇿 9.25(월) 17:00 (KST)

🇰🇷v🇹🇭 9.27(수) 18:00 (KST)

🇰🇷v🇰🇿 9.30(토) 17:0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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